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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단|  역사관

팬들과 함께한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농구단의 지난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지난 두 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특히 2014-2015시 즌은 전력이 좋아질 여러 요소가 있었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새판짜기’ 를 노리고 2015년 4월 새로 영입한 전창진 감독이 불법 도박과 승부조작 파문에 휩싸이면서 2015-2016시즌 준비에도 차질이 생겼다.

‘장밋빛’에서 ‘먹구름’으로

인삼공사의 팬들은 희망을 품고 2014-2015시즌 개막을 기다렸다. 기쁜 소식들이 많았다. 우선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양희종과 5년 재계약을 했다. 2013-2014시즌 우수 수비상을 받은 양희종은 팀 전력에서 비중이 큰 포워드이다. 인삼공사는 또 가드 김태술을 KCC로 보내면서 가드 강병현과 포워드 장민국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했다. 김태술은 인삼공사의 간판급 스타였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땐 한국 대표선수 중 어시스트(평균 3.6개)와 가로채 기(평균 1.9개) 1위를 했다. 하지만 인삼공사엔 또 다른 국가대표 가드인 박찬희가 있었고, 이정 현도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2014-2015시즌 막판 가세할 예정이었다.
박찬희와 이정현이 김태술의 공백을 충분히 메워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출발부터 불안했 다. 개막 후 1승6패를 하며 최하위로 떨어졌다. 국내선수와 외국인선수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동남 감독대행의 지도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온 일병’이 분위기 반전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살린 해결사는 오세근이었다. 그는 2011년 신인 전체 1순위 지명, 2011~2012시즌 신인왕과 챔피언전 우승, 플레이오프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한 국내 최고의 센터다. 사실 오세근은 개막 전까지만 해도 인삼공사의 전력에서 빠져 있었다.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작년 4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오세근은 6주간 신병 교육 훈련을 마치고 나서 충북 진천에 있는 선수촌에 들어가 대표팀 합숙훈련을 했다. FIBA(국제농구연맹)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느라 병영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은 작년 가을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던 이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12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남자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다. 현역 일병 신분이었던 오세근은 입대 6개월여 만에 조기 전역을 하고 민간인이 됐다.
다시 인삼공사 유니폼을 입고 치른 복귀전은 작년 10월30일 오리온스와의 홈 경기였다. 오세근은 동료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모자랐고, 경기 감각이나 체력이 완전치 않은 상태 에서도 맹활약했다. 40분 경기 중 24분50초만 뛰고도 팀에서 중 가장 많은 점수(16점)를 올렸 고,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리바운드(10개)를 잡아냈다. ‘오세근 효과’를 앞세운 인삼공사는 개막 후 8전 전승을 달리며 1라운드 전승을 노렸던 선두 오리온스를 물리치며 신바람을 냈다.

상승세 끊기고 부상 악재에 고전

인삼공사는 오세근이 합류한 이후 안정을 찾아갔다.
시즌 54경기의 반환점을 돌았을 무렵엔 6위까지 오르며 힘을 내는 듯 했으나, 대표팀에서 복귀한 양희종과 오세근이 무리한 몸상태로 인해 발목 부상의 후유증을 겪으며 3, 4라운드부터 결장이 잦아졌다. 결국 인삼공사는 4라운드 1승 8패라는 부진에 빠지면서 사실상 6강 경쟁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정규리그 후반부인 5, 6라운드에서는 각각 5승 4패씩을 거두며 끝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8위에 그치며 아쉬웠던 시즌을 마무리했다.